
Program Note

Arvo Pärt
Variations for the Healing of Arinushka
아르보 패르트, 아리누슈카의 쾌유를 위한 변주곡
에스토니아 출신의 현대 음악 거장 아르보 패르트가 1977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그의 딸 아리누슈카의 수술 후 쾌유를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완성되었다. 이 곡은 패르트의 독자적인 작곡 철학이자 라틴어로 ‘작은 종’을 뜻하는 ‘틴티나불리’ 양식이 확립되던 시기의 핵심적인 지표가 되는 수작이다. 도입부부터 유영하듯 흐르는 극도로 절제된 선율의 반복은 역설적으로 청중의 내면에서 깊은 정적과 섬세한 감각의 파동을 일깨운다. 총 6개의 간결한 변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전개 대신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지닌 미학적 가치에 집중한다. 피아노의 타건이 마치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은은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질 때, 현대 음악 특유의 난해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본질적인 치유의 정서가 채워진다. 소리와 침묵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이 경건한 울림은 이번 리사이틀의 문을 여는 서곡으로서, 관객들을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조망하는 ‘시간의 풍경’ 속으로 깊숙이 안내할 것이다.
Joseph Haydn
Sonata in c minor, Hob. XVI:20
요제프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다단조
1771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요제프 하이든이 자신의 건반 음악에 '소나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처음 부여한 기념비적인 곡이다. 하이든의 초기 건반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이 소나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난이도와 극명한 다이내믹의 대비, 그리고 비극적이고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 하이든 스스로도 동시기에 출판된 6개의 소나타 세트 중 이 곡을 가장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꼽았을 만큼, 연주자에게 고도의 테크닉과 깊은 해석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음악학자 리처드 위그모어는 이 곡의 어둡고 열정적인 성격에 주목하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Appassionata)'에 비견되는 "하이든의 아파시오나타"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18세기 유럽을 휩쓴 '질풍노도' 사조의 음악적 발현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미 속에서도 끓어오르는 인간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Franz Liszt
Bénédiction de Dieu dans la Solitude, S.173 No.3
프란츠 리스트, 고독 속에서의 신의 축복
당시 피아노의 초절 기교 대가로 불리우던 리스트가 프랑스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탱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집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의 10곡 중 3번째 곡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리스트가 화려한 비르투오소의 삶을 뒤로 하고 고독 끝에서 스스로 마주한 내면의 평온과 종교적 황홀경을 추구하던 시기의 정점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특히 곡을 아우르며 반복되는 유려한 아르페지오 선율은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투과하는 빛의 산란을 연상시키며, 명상적인 서정성으로 시작하여 벅차오르는 격정의 서사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구조는, 청중으로 하여금 단순한 감상을 넘어 고요한 고독 속에서 피어나는 영적 위안과 신성한 감동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Stephen Hough
Metropolis (A Sonatina) *Asia Premiere
스티븐 허프, 메트로폴리스 (소나티나) *아시아 초연
영국의 권위 있는 매체 <더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현존하는 20인의 석학’ 중 한 명이자, 클래식 연주자 최초로 맥아더 펠로우십을 수상한 거장 스티븐 허프는 이 시대 가장 독보적인 ‘폴리매스형’ 예술가로 손꼽힌다. 세계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작곡가, 작가로서도 정점에 서 있는 그의 음악적 통찰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메트로폴리스>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단악장 구성의 소나티네 형식인 이 곡은 제목이 암시하듯 현대 도시의 파편화된 풍경과 그 속에 흐르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피아니즘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허프 특유의 지적인 위트와 정교한 작법이 돋보이는 이 곡은, 도시의 소음과 속도감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리듬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의 고독을 담은 서정적 순간들이 층층이 교차하며 입체적인 텍스처를 형성한다.
Jean Sibelius
The Spruce Op.75 No.5
장 시벨리우스, 가문비나무
핀란드를 대표하는 국민 악파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북유럽의 거친 자연을 향한 특별한 애착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조국의 자연 경관을 수려하게 묘사했다. 1914년에 작곡된 피아노 소품집 Op.75은 수록된 다섯 곡 모두가 나무를 주제로 연결되어 있어, 오늘날 ‘다섯 개의 나무’라는 별칭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그중 다섯 번째 곡인 ‘가문비나무 (핀란드어: Kuusi)’는 북유럽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지만 잔잔하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가문비 나무의 형상을 고요하고도 숭고한 감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곡 전반에 흐르는 서늘한 서정성과 절제된 선율은 핀란드의 깊은 숲 속을 거니는 듯한 공간감을 선사하며, 화려한 기교 대신 음의 본질에 집중하는 시벨리우스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어법을 보여준다.
Fred Hersch
Valentine
프레드 허쉬, 발렌타인
현대 재즈 피아노의 거장 프레드 허쉬가 2001년 발렌타인 데이에 단 20분 만에 써 내려간 자작곡이다. 2008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연주 작곡’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본래 재즈 트리오를 위해 쓰였으나 클래식 연주자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2010년 피아노 독주용 버전이 완성되었다. 곡의 도입부와 중반부에 배치된 자유로운 즉흥 섹션은 연주자의 직관적인 감각을 요구하며, 작곡가가 명시한 "여유롭고 따뜻하며 큰 애정을 담은 (With great affection and warmth)" 연주 지시는 이 곡이 지향하는 사랑스러운 정서적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절제된 선율 속에 숨겨진 세련된 화성 진행은 마치 현대인의 내밀한 고백처럼 다가오며, 미니멀하면서도 입체적인 사운드 텍스처를 통해 탐미주의적 경지를 선사한다.
Felix Mendelssohn
Song without Words Op. 62 No. 6 'Spring Song'
펠릭스 멘델스존, 무언가 '봄의 노래'
19세기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이 절정에 달했던 1830년 무렵, 펠릭스 멘델스존은 <무언가>라는 혁신적인 장르를 개척했다. '가사 없는 노래'라는 뜻의 이 장르는 구체적인 텍스트 대신 선율 그 자체로 사물의 형상이나 내밀한 감정을 그려내는 기악곡이다. 멘델스존은 평생에 걸쳐 총 48곡의 무언가를 남겼는데, 짧은 소품 형식이지만 그 안에는 시적인 정취와 낭만적인 선율미가 밀도 있게 응축되어 있다. 그 중 작품 번호 62-6번 '봄의 노래'는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이 계절과 가장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명곡이다. 곡 전반을 수놓는 경쾌한 장식음과 유려한 아르페지오 선율은 마치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잎과 산들바람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Mischa Levitzki
The Enchanted Nymph
미샤 레비츠키, 마법에 걸린 요정
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 전역을 매료시켰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미샤 레비츠키의 음악적 감각이 집약된 보석 같은 소품이다. 레비츠키는 베를린 국립음대 역사상 거장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의 최연소 제자로 입학하고 멘델스존 상을 거머쥐었을 만큼 천재적인 음악성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법에 걸린 요정>은 작곡가 본인이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며 직접 연주하여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곡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숲속을 거니는 요정의 신비롭고도 재치 있는 움직임을 건반 위에 포착해낸다. 끊임없이 반짝이는 고음역대의 장식음과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리듬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낭만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복잡한 서사보다는 청각적인 즐거움과 정교한 세공미에 집중하는 이 곡은, 레비츠키 특유의 세련된 화법과 낭만적인 위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Sergei Rachmaninoff
Variations on a theme of Chopin Op. 22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쇼팽 테마에 의한 변주곡
1902년과 1903년 사이 완성된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두 개의 대규모 피아노 변주곡 중 그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걸작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향한 경의를 담아, 그의 가장 유명한 선율 중 하나인 <24개의 전주곡 Op.28> 중 제20번의 테마를 빌려와 총 22개의 다채로운 변주를 펼쳐낸다. 이 곡은 훗날 그가 노년에 작곡한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42>과 더불어 라흐마니노프 변주 기법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쇼팽이 남긴 짧고 장중한 9마디의 테마는 라흐마니노프의 손길을 거치며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때로는 서정적인 노래가 되어 거대한 서사시로 확장된다. 특히 곡 초반부의 정교한 구성은 중반부 이후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화려하고 압도적인 기교와 만나 청중을 압도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극심한 슬럼프를 극복하고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재기에 성공한 직후, 창작의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의 산물이다. 따라서 곡 전반에 흐르는 특유의 러시아적 우울함 너머에는 찬란한 빛과 생동감이 공존한다.
